한국문화원에서는 「한류교류사」를 주제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점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강연회를 총 11회에 걸쳐 개최합니다.
일곱번째 강연은 6월에 열린 「조선통신사의 시작과 무로마치시대/조선시대전기의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에 이어 7월 11일(일) 「조선왕조 후기의 통신사와 아메노모리호슈」라는 제목으로 나카오 히로시 교토조형예술대학개원교수가 통신사의 의의 및 동아시아의 선린외교체제속에서 통신사외교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 강연하였습니다.
조선 통신사의 성격은 회례, 포로 쇄환등의 목적에서 통신사로 변했으며 통신사의 통은 「통하다, 나누다」 신은 「믿다」로 신의를 통해 교류함을 의미합니다.
도요토미 막부의 장군이 바뀔 때 축하 국서를 전하기 위해서 정사, 부사, 종사관을 필두로 한 약 500여명에 달하는 화원, 의사 등의 문화인이 함께 동행한 외교의례로, 일본에 있어 당시 조선은 유일하게 대등한 관계의 내빙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 40편에 달하는 통신사에 관련된 기행문 「도중일기(道中日記)」를 보면 잘 정돈된 가로수 길, 일반 여성의 높은 식자율, 2000명이나 되는 대행렬을 위해 준비된 길가의 화장실, 밤행렬을 대비해 높은 곳에 설치된 등(灯) 등 세심한 준비가 구석구석까지 미친 것을 포함한 의전이 잘 그려져 있으며 이는 자료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통신사의 성과로서, 많은 한시문 교환에 의해 많은 현판이 일본 각지에 남게 되고, 도화서의 화원, 의사끼리의 교류, 예능면에서는 조선의 영향을 받은 가라코오도리(唐子踊), 인형등이 우시마도(牛窓), 쓰(津) 등의 통신사 체류지에서 보여지는 있는 점 등 다양한 문화교류흔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통신사를 통해 고구마, 담배, 관개용수차 등이 한국에 전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나카오 교수는 많은 일본인이 에도시대를 쇄국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실제는 중국, 류큐, 네덜란드 및 조선과의 교역과 외교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있었으며 일본인의 시야가 해외로부터 닫혀져 있던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활약한 외교관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조선어에 능통했으며 당시 조선과 도쿠가와 막부간의 외교, 문화교류의 중개역할을 했던 사쓰마번의 조선전문담당관리(朝鮮御用方佐役)였습니다. 8대 장군 요시무네(吉宗) 때를 비롯하여 에도까지 두 번 통신사와 함께 왕복했으며 저서「교린제성 交隣提醒」에는 진실한 마음을 갖고 교류하는 것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호슈의 조선 인식에서는 선입관을 배제하고 대등성을 인식하고, 다문화공생론, 히데요시의 출병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이 담겨있으며 「성신(誠信) 교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등의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 통신사의 왕래는 동아시아의 가교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편견을 극복하고 문화의 차이를 안다는 것입니다.
도쿠가와 막부도 통신사를 그만둘 작정은 없었지만, 통신사는 결국 왜 끊어지게 되었을까요?
강연회에서는 대기근, 일본 국내의 봉기 등의 문제로 재개가 어려웠던 타이밍이 겹친 것, 17세기 이후의 지식인들에게는 통신사의 취지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던 점, 메이지정권으로 바뀌면서 대등외교에 대한 부정, 메이지6년 정변 발생등이 이유로 거론되었습니다.
다음 강연은 8월 5일(화) 19시 「대한제국 황제가 파견한 유학생들의 도쿄 체험」으로 강사는 「황실특파유학생」의 저자 다케이 하지메씨입니다.
강연 관람은 7월 22일까지 응모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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