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원에서는 「한류교류사」를 주제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점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강연회를 총 11회에 걸쳐 개최합니다.
5번째 강연에는 지난 강연에 이어 한국의 고대사와 동아시아사를 전공한 와세다대학문학학술원장인 이성시 교수가 등단, 「고대 동아시아 속의 신라・발해・일본교류사」라는 주제로 5월 23일 (금) 열렸습니다.
지난 강연회에서 이성시 교수는 "7세기경에서 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신라와 일본 사이에는 수많은 사절단이 왕래하였으나 우호적인 관계라기보다는 긴장된 동아시아 각국의 외교관계를 포함한 전략적인 의미가 강했으며 신라와 당의 관계 그리고 발해의 대두에 따라 그 관계도 바뀌었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번 강연회는 발해와 일본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었습니다.
698년 한반도 북측에 고구려유민이 집결, 주변 제부족을 통합한 발해가 건국되었으며 발해는 당과 신라 사이에서 외교활로로서 일본과 접촉하며 727년부터 멸망하기까지 일본에 33회에 달하는 공적사절단을 보내고 일본에서는 13회에 걸쳐 사절단을 보냅니다.
실시되지는 않았으나 762년 양국의 군사동맹을 전제로 한 신라정벌계획이 있었다는 문헌기록으로 보아 발해와 일본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보면 신라의 공적사절단은 780년으로 끝났으나 727년이후 10세기반까지 발해와 지속적으로 사절단이 왕래되어 대륙의 최신정보나 문물을 발해를 통해 받아들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성시 교수는 한국이나 북한이나 발해를 자국사로 보고 있으나 당시 여러 부족을 통합한 발해와 신라와의 교역 내용을 볼 때 꼭 같은 한민족이 남북한으로서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론을 전개하며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은 당나라를 중심으로 한 외교관계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당 이상으로 신라 및 발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라며 강연회를 마쳤습니다.
다음에는 나카오 히로시 교토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의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한 강연이 6월, 7월 2회에 걸쳐 개최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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