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원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회씩 문화강연 시리즈「내 안의 한국」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매회 호평을 받고 있는 강연회의 6번째 강연자는 멀리 가고시마에서 오신 15대 심수관 도예가입니다. 강연은 「4백년의 시공」이라는 제목으로 약400년전 선조가 정유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 왔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끌려 온 조선도공의 기술로 하기, 아리타,가라쓰 그리고 심수관가(家)의 사쓰마 도자기등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좁은 범위에서 다른 표정을 갖고 있는 도자기가 생겨나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예가 드물며 한국이라는 같은 근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각지에서 사용된 재료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수관 도예가는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의 차이를 한국에 「고려청자」「조선백자」와 같이 시대별로 대표적인 도자기가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시대별이 아닌 지역별로 도자기의 특징이 있는 것이 다르며 이것이 지금까지도 각 지역에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라 이야기하였습니다.
한반도에서 끌려온 많은 도공들은 일본의 이름과 성을 받아 일본인으로서 살 것을 강요받았으나 사쓰마번의 영주 시마즈가(家)는 달랐다고 합니다.
시마즈가는 조선과의 밀무역을위해 도공에게 도자기제작 뿐 아니라 조선과의 무역에서 통역등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의 언어와 복장 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쓰마에 끌려온 도공은 미야마지역에 할애받은 땅을 거점으로 사쓰마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리틀코리안타운」과 같은 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막부말기에 이르러 시마즈번은 세계각국의 정세에 맞추어 일본의 근대화를 다지기 위해 세계로의 진출을 염두하고 1867년 파리박람회에 사쓰마류큐국으로써 단독 참가하였으며 이때 출품된 사쓰마도자기가 큰 호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일본정부에 의해 한반도가 식민지화되면서 심수관가는 조선인으로서 사는것에 많은 차별을 받게 되었으며 이 속에서 가문을 지켜나가는 것에 15대 심수관 도예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400년의 역사를 잇는 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사이에 놓인 복잡한 심경 역시 끌어안아야하는것으로 힘에 겨울때도 있었다는 심수관 도예가. 자신이 적성에 맞는지 가업을 계속 이어야 하는지,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받는 차별, 한국에서 일본인으로서 겪는 위화감 등 많은 어려움 속에 고민도 하고 아버지인 14대 심수관도예와도 친분이 있는 소설가 시바타 료의 조언을 받기도 하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 도예가는 「근원은 한국이나 지금은 가고시마에서 사쓰마도자기를 만들고 있고 하나의 개체로서 일본사회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본의 인정을 받게 되면 한국에서도 인정받고 세계로도 이어질것이다」라며 강연회를 끝냈습니다.
많은 관심속에 개최되는 강연회 시리즈는 마지막 강연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음 강연은 아사히신문사의 한국정보통인 사쿠라이 이즈미 국제부 기자를 모시고 일본신문이 바라보는 한반도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10월 16일 개최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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